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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Jung 분석심리학의 이해 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11.02
첨부파일0
추천수
1
조회수
3743
내용

 

2. 분석심리학적 정신치료의 기본원칙 

 

분석심리학적 정신치료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치료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과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변증법적 과정을 중시한다.

 

변증법은 원래 고대 그리스 철학의 대화술의 하나였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기원전 399)

대화야말로 진리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했으며, 그 당시 유행하던 소피스트적인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에 대한 깨달음을 통하여 진정한 앎에 이르도록 도왔다.

 

이것이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다. 산파는 아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아기가 산모의 몸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인 것처럼, 서로가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 속에 있는 진리의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또한 소크라테스식 질문법은 본질이 아닌 것을 마치 본질인 것처럼 알고 사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하게 함으로써, 그러한 과정을 통해 진리의 세계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이와 같은 소크라테스식의 대화법에 영향을 받은 Jung은 자신의 정신치료를 대화를 통한 변증법적 과정으로 보았고, 분석가와 피분석자(환자)의 서로 다른 두 정신체계가 상호작용함으로써 연금술적인 새로운 합성(合性)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그에 따르면, 한 개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체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두 사람이 만날 때 서로 다른 두 정신체계가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또한 두 정신체계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정신적 영향을 주고받게 되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정신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Jung은 다른 사람의 개별성에 대해서 말할 때는 언제나 자신의 개별성에 기초하여 이해한 것만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자로서 다른 사람(환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을 강요하거나 주장하거나 자신의 암시에 넘어오도록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개별적이며 고유한 인간을 대상으로 정신치료를 하고자 하는 치료자는, 좋든 싫든 자신의 권위, 영향을 주고자 하는 마음, 자신이 더 많이 안다는 온갖 마음들을 포기해야만 하며, 결과적으로 상호 개별성과 의견을 교환하는 변증법적 대화의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피분석자나 환자)이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두 정신 체계는 연결되고, 각자의 고유한 정신 체계 내에서 새로운 변환(Transformation)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자세는 치료자가 환자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겸손하고도 인격적인 자세이며,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 치료기법이나 이론의 습득보다는 우선 치료자 자신의 인격적인 수련을 필요로 하는 자세이다. Jung은 이러한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두 암시치료라고 보았다.

 

나아가 특정한 치료기법을 중시하는 모든 방법은 암시치료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개별적인 대상이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암시치료는 치료자가 환자의 개별성에 관해 알 수 있거나 평가할 수 있거나 해석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덕망, 재능, 개성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특질이지 대중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Jung의 관점에서 볼 때, 대중들은 <집단인간>으로서의 원시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암시치료적인 방법이 치료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여기에서 치료자가 어떤 치료방법을 믿느냐는 중요하다. 그가 특정한 치료방법을 믿는다면 그는 환자를 위하여 진지한 태도와 인내로써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러한 자발적인 노력과 헌신은 <집단인간>의 정신적 토양을 개선할 수 있는 만큼 치유작용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집단인간>인 동시에 <개별인간>인 존재이다. 따라서 어느 인간이 고통을 받고 아픈가에 따라 치료적인 접근도 달라져야만 한다. 개별적인 것 대 보편적인 것은 이율배반의 관계이며, 이러한 이율배반은 철학적인 기준일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 기준에도 적용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로 <집단인간>이 되고자 하며, 집단적인 것에 만족하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특별한 야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일반 대중교육이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공교육은 개성적인 것과 무법성(無法性)을 동의어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수준에서는 개인적인 것은 보다 열등한 것으로 평가되고 억압되므로 이런 단계에서의 신경증은 심리적 병독(病毒)으로 나타나게 된다. 집단 안에서 <집단인간>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되고 병이 되는 것이다.

 

Jung은 심리적인 관점에서 정신신경증을 크게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 , 개성이 미발달된 집단적인 성격을 띤 <집단인간>들의 부류와, 집단적인 적응을 하는데 위축이 된 <개인주의자>들의 부류이다. 이에 따라 치료태도는 달라져야 한다.

 

그 까닭은 신경증적인 <개인주의자>들의 경우에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집단인간>을 인정하고 집단적인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건강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환자들에게는 적정하고 타당한 수준까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과도할 정도로 집단에 잘 적응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집단인간으로서는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집단이 추구하는 부와 권력과 명예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고 어느 정도는 이루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사람들이다.

 

Jung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을 정상화시키려고 하는 것, 즉 집단의 일반적인 수준에 맞추려고 하는 것은 대단히 큰 잘못이다. 그런데도 정신치료자들은 그런 어리석음을 자주 범하고 있다고 한다. 그럴 경우 개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개성까지도 말살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개인적인 것은 주관적이고, 일회적이며, 예측할 수 없고, 해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치료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이론적 가정과 기법을 포기하고, 자신의 선지식을 내려놓은 채, 오직 모르는 태도를 취하면서, 순수한 변증법적 과정에 참여해야만 한다.

 

변증법적 치료란 될 수 있는 대로 편견이 없는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이전의 것을 포기하는 자세와 판단중지, 그리고 용기를 요구한다. 바꾸어 말하면 치료자는 이미 알고 행동하는 주체가 아니고 개인의 발달과정에서 함께 체험해가는 자인 것이다.

 

또한 분석가 역시 자신의 미해결된 과제와 고유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선 분석가 자신부터 분석되어야 한다. 정신치료자는 자신의 고유한 인격을 도외시한 채 권위로써 환자를 해석할 수도 없고, 인도할 수도 없고, 치료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치료자는 자신의 특이성이나 특수한 태도로 인하여 환자의 병을 회복시키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 대해 분명한 통찰을 갖지 않으면 환자가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게 되며, 이것은 환자에게 커다란 손해를 입힐 수도 있다.

 

치료자가 분석을 받아야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분석을 통하여 변증법적 치료과정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이라는 변증법적 대화의 과정에서 분석가와 피분석자는 묻는 자일뿐 아니라 대답하는 자로서 서로 다른 정신 체계와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서로에게 우월한 자도, 많이 아는 자도 아니고, 재판관이나 충고를 주는 사람도 아니며, 그저 함께 체험하는 자로서, 환자라고 부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체험을 통하여 마침내 치료자는 환자를 소중한 한 인격체로 만날 수 있게 된다.

 

 

 

<참고문헌>

이문성,이부영 역(1996), 현대정신치료의 제 문제, 한국분석심리학회지 제 11.

한국융연구원 역(2001), 정신요법의 기본문제, 융 기본 저작집 1.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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